4·19 혁명은 1960년 4월 이승만 자유당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,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시작된 민주 항쟁입니다. <br /> <br />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이죠. <br /> <br />당시 이승만 정권은 12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장기 집권하며 온갖 정치적 부정과 탄압을 일삼았습니다. <br /> <br />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, 폭력단 등을 동원한 상태에서 통과시킨 '발췌 개헌'과 개헌 투표에 찬성표를 반올림한 이른바 '사사오입 개헌' 등이 대표적이죠. <br /> <br />그러다 1960년 3월 15일 다시 한 번 부정 선거를 저지르는데요. 투표함 바꿔치기, 득표수 조작, 반공개 투표 등을 자행합니다. <br /> <br />이에 반발한 마산 시민과 학생들은 부정선거에 맞서 시위 투쟁을 벌였고, 이후 마산 앞바다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어린 학생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. <br /> <br />바로 마산 시위에 참석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었죠. <br /> <br />신문을 통해 알려진 소년의 죽음에 온 국민이 분노했고,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은 4월 19일, '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'를 외치며 총궐기하게 됩니다. <br /> <br />주요 도시에 계엄령이 선포됐지만,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군중들은 정권의 무력에 굴하지 않았고, 마침내 4월 26일,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됩니다. <br /> <br />그렇게 국민의 힘으로 민주적인 새 정부를 세웠지만, 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날의 혁명은 혁명으로 불리지 못했습니다. <br /> <br />박정희 정권 시절인 5차 개헌에서는 '의거', 이어진 전두환 정권에서는 관련 내용이 아예 삭제되기도 했는데요. <br /> <br />그렇게 34년이 흐른 1994년, 비로소 4월 19일 그날의 국민적인 저항운동을 4·19 혁명으로 당당히 이름 짓게 된 것입니다.<br /><br />▶ 기사 원문 : https://www.ytn.co.kr/_ln/0101_201904191657167888<br />▶ 제보 안내 : http://goo.gl/gEvsAL, 모바일앱, 8585@ytn.co.kr, #2424<br /><br />▣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: http://goo.gl/oXJWJs<br /><br />[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/ Korea News Channel YTN ]
